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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길

천량성 2012. 1. 6. 16:56

 

이해인 수녀의 시에 "죽음을 잊고 살다가 누군가의 임종 소식을 들으면 가슴 속에 찬바람이 분다."

는 구절이 있다.

누군가의 병 문안을 다녀왔을 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문득 문득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가끔 상가에 들러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나면 내 자신이 새삼 겸손해진다.

우리의 삶이 보잘것 없는 뜬 구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명예와 재산, 교만과 아집으로 살지만 죽을 때는 삶에 지친 육신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죽은자를 보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모두가 마지막으로 입는 옷은 똑같다.

주머니 없는 거친 베옷 한 벌 입고 떠나는 게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처럼 마지막에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

죽는 길에는 명예와 재산은 물론이고, 그 무었도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였고 ,

세계를 지배했던 나폴레옹 또한 양손을 관 밖으로드러내 놓았다고 한다.

두 발과 두 손은 우리 삶의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우리 삶에서 욕심과 소유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생을 마감할때, 분명하고 모범적인 발자국을 남기라는 의미에서

부처님은 두 발을 보였고,

나폴레옹 또한 세계를 지휘했던 손이지만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그랬던게 아니었을까.

가까운 친지의 죽음은 우리들 차례에 대한 예행연습이며,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삶은 불확실한 인생의 과정 이지만 죽음만은 틀림없는 인생의 매듭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삶의 기술을 모르는 사람은 죽음의 기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잘 사는 일은 잘 죽는 일과 똑같다.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자.

그래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똑바로 살수 있지 않을까.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있다.

지금 우리는 똥밭을 구르고 있지 않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