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의 추억....(물고기는 물속에서 헤엄치면서도 물을 잊고 산다.)
몇일전 퇴근후 집에 들어가 구수한 된장찌게와
조기구이와 맛난 저녁을 먹으며,
오미자술 반주와 제철과일을 먹고 배부른 작은 행복감에 젖은후,
치실과 양치질을 하고 이쁜 강쥐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양치질을 하러간 집사람이 큰 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당신 내 칫솔로 양치 했어?
자기 것도 구분을 못해?"
하면서 칫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인데 이렇게 큰소리치며 칫솔을 버리니
슬쩍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옛날에는 지방이나 여행가서 칫솔을 한개만 가져왔을때는
같이 쓰기도 했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살짝 부아 (副衙 ; 분하고 노여운 마음) 가 났다.
칫솔에 대해서는 나도 작은 추억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88년.
처녀시절 아내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었고
나와 결혼후에도 나는 장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장모님의 고향은 개성이고 아버님이 한의원을 하시면서
인삼밭도 경작하셨었다.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동생을 돌보기도 하며 인삼밭에서 잡초도 뽑으면서
가사일을 돌보다가 건축일로 개성에 오신 장인을 만나
몰래 몰래 데이트를 하시다가 양가 승락을 받고
결혼하여 효자동에서 신혼을 시작하셨다 한다.
그 당시에도 역시 배고픈 시절이어서 인삼밭에서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몰래 몰래 인삼을 뽑아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80이 되도록 본인 치아에 신문도
안경을 쓰지 않고 보셨고, 하체도 운동선수 처럼 튼실하셨다.
하지만 조금은 치매가 있으셔서 밥을 금방 드시고는
왜 밥을 안주냐고 밥을 달라는 경우도 있고 우리몰래
소주나 맥주를 사놓고 드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맞벌이를 하는 우리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술에 취해 우리를 맞이 하셨는데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드셨느냐고 하면 내가 언제 술을 마셨느냐고
어긋장 (어깃장,순순히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말이나 행동) 을
놓곤 하여 작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동네 노인정에 자주 가시는데 같은 연배의 술친구분들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집을 못찾아와
동사무소 직원이나 순경이 집에 모셔오기도 했었는데
많이 속상했던 일들은 노인정에서 술을 드시고
집에 오시다가 넘어져 손과 얼굴을 다쳐서
오랜동안 치료를 받을때와 집안의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그릇을 깨는 경우에도 항상 본인이
안했다고 하시니 딸인 집사람 입장에서는
많이 속상했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양치를 하려니 내 칫솔이 물기가
묻어 있었다.
집사람보고 내 칫솔을 썼냐니까 안썼다 하더니
장모님을 모시고 화장실에가서 엄마 어떤걸로 양치해?
하고 물으니 내 칫솔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이걸로 쓴다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가끔씩 내 칫솔에 물기가 묻어 있어도 그려러니 하고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장모님이 사용한 것이었다.
칫솔통에 6개정도의 각기 다른 색깔의 칫솔이 있었는데
장모님은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깔을 바꿔서
사용했던 것이 었다.
집안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이나 행동이 내 생각과 달라도
무조건 따르고 존중해 드리는게 내 생각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내 칫솔은
다른것으로 바꾸어 숨겨두고 사용함으로 칫솔사건은
아주 작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8년간을 장모님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소소하고 자잘한
행복을 누리다가 영면 (永眠 ; 죽어 영원히 잠들다.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 을 하셨다.
죽을복을 타고 태어나셨는지 노환으로 잠간 아프시다가
하늘나라로 행복한 소풍을 떠나신 것이었다.
장모님을 모시고 살때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같이
아버님.어머님(시부모님) 을 찾아뵙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고 집사람 역시 불만 없이 잘 따라 주었었다.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표시가 별로 안나도 나간 자리는
표시가 많이 난다는 말처럼 한동안 적적함과 그리움으로
많은 날들을 지내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제사에 참석을 한다.
장모님도 아들과 딸들이 계시지만 항상 막내사위와 사신다고 하여
오빠나 언니들이 서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나 자신도 집안에 어른이신 장모님이 계심으로 인해 든든하고
내가 모실 수 있음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살았었다.
오늘이 혼자계신 어머님의 생신이시다.
어제 저녁 미역국 끓여 갔다 드리고 왔는데 다른때 보다
유난히 마음이 울적하여 새벽까지 이스리를 마시며
부모님의 큰사랑에 고맙고 감사함을 느낀다.
魚得水逝 而相忘乎水 (어득수서 이상망호수)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조승풍비 이불지유풍)
識此 可以超物累 可以樂天機 (식차 가이초물누 가이낙천기)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되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건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알면 사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며,
하늘의 오묘한 작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니라.(채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