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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의 추억(강쥐들의 이사 프로젝트)

천량성 2015. 10. 28. 18:33

 

 

일때문에 시내에 나가 2시 30분경 늦은 점심으로

스테이크와 피자를 먹으니 그 맛과 재미가 쏠쏠하다.

 

일과 식사가 끝나고 상대방이 피자 한판을 사줘 가져 왔다.

얻어 먹는거라 그런가 맛도 재미도 좋아 웃음이 나온다.

 

퇴근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마눌의 카톡이 온다.

강쥐들과(별.체리.딸기) 침대에서 같이 자는데 세녀석이 달라붙어 자니

몸을 돌려 눕지 못해 불편하니 *마트에 가서 녀석들 집도 사고 장도 보잔다.

 

나도 내심 녀석들과 자면서 불편했지만 따뜻하게 안고 자는

즐거움도 있어 참았는데 마눌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마눌말을 듣는 것이 가정의 평화가 오니 군소리 없이 *마트에 모시고 갔다.

  

 

*마트에서 심사숙고해서 고른 녀석들 집인데 알록달록 화려하고 이쁘다.

4만원*3 = 12만원 들여 구입했는데 이집에서 안자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

 

일단 집에 들어와 1.2.3번 번호를 쓴후 놓았더니

들락날락 하고 냄새를 맡더니 싫어하는 눈치가 아니라 다행이다.

 

각자 집에 들어가게 하고 사진을 찍으니

넘 이쁘고 깨알같이 작은 행복이 밀려온다.

녀석들에게도 집이 생겼으니 무주택자가 아니라 더욱 좋고 잼난다.

 

 

 

 

 

 

 

9시경 늦은 저녁으로 낮에 받은 피자를 렌지에 넣고

뜨겁게 해 먹으니 맛이 있다.

하기사 내입맛에 뭐는 맛이 없겠는가................

 

적지 않은 양의 피자를 마눌과 먹고 난후,

일욜 등산후 가락시장에서 방어회와 농어.새우튀김.

그리고 매운탕으로 뒷풀이 할때 사온 홍어회를 막걸리와 함께 먹으니

새로운 맛의 신세계에 빠져든다.

 

잘시간이 되어 치실.치간칫솔을 하고 양치를 하는데

마눌이 눈을 흘기며 한 소리 한다.

 

"자기는 매일 쓰는 칫솔도 구분못해 아침에 내 칫솔을 사용했어,

 본인칫솔 색깔도 몰라서 내 칫솔을 썻냐고" 머퉁이를 한다.

 

몇년전에도 한번 그런일이 있었는데................

칫솔통에 빨간색과 초록색의 칫솔이 있는데 갑자기 멘붕이 온건지

내 칫솔이 어떤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매일 쓰는 칫솔인데...................

 

잠시 생각하다 "그래 이왕이면 빨간색이다" 생각하며 썻는데

그게 마누라 칫솔이었던 것이다. 

 

몇년전에도 그런일로 쪼메 빈정삿는데 또 그렇게 기분이 찜찜하다.

그일이 있은후 글을 썼었는데 다시한번 올려 본다.

 

 

 

퇴근후 집에 들어가 구수한 된장찌게.조기구이와 맛난 저녁과 오미자술과

제철과일을 먹고 배부른 작은 행복감에 젖어 있는데

 

양치질을 하러간 마눌이 큰 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당신 내 칫솔로 양치 했어?

 자기 것도 구분을 못해?"

하면서 칫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인데 이렇게 큰소리치며 칫솔을 버리니

슬쩍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옛날에는 지방이나 여행가서 칫솔을 한개만 가져왔을때는

같이 쓰기도 했는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살짝 부아 (副衙 ; 분하고 노여운 마음) 가 났다.

 

칫솔에 대해서는 나도 작은 추억이 있었다

처녀시절 아내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었고

나와 결혼후에도 나는 장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장모님의 고향은 개성이고 아버님이 한의원을 하시면서

인삼밭도 경작하셨단다.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집안일을 돕기도 하고

인삼밭에 잡초도뽑고 남동생을 돌보기도했는데

그 동생이 훗날 기독교방송국 사장까지 하기도 했다.

 

장모님은 개성에서 가사일을 돌보다가 건축일로 개성에 오신

장인을 만나 몰래 몰래 데이트를 하고 양가 승락을 받고

결혼하여 효자동에서 신혼을 시작하셨다 한다.

 

그 당시에도 역시 배고픈 시절이어서 인삼밭에서 일을

하다 배가 고프면 몰래 인삼을 뽑아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80이 되도록 본인 치아에 신문도

안경을 쓰지 않고 보셨고, 하체도 운동선수 처럼 튼실하셨다.

 

하지만 조금은 치매가 있으셔서 밥을 금방 드시고는

왜 밥을 안주냐고 밥을 달라는 경우도 있고 우리몰래

소주나 맥주를 사놓고 드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맞벌이를 하는 우리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술에 취해 우리를 맞이 하셨는데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드셨느냐고 하면 내가 언제 술을 마셨느냐고

 

어긋장 (어깃장,순순히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말이나 행동) 을

놓곤 하여 작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동네 노인정에 자주 가시는데 같은 연배의 술친구분들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집을 못찾아와

동사무소 직원이나 경찰이 집에 모셔오기도 했었는데

 

많이 속상했던 일들은 노인정에서 술을 드시고 집에

오시다가 넘어져 손과 얼굴을 다쳐 오랜동안 치료를 받을때와

집안의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그릇을 깨는 경우에도

항상 본인이 안했다고 하시니 딸인 집사람 입장에서는 많이 속상했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양치를 하려니 내 칫솔이 물기가 묻어 있었다.

집사람보고 내 칫솔을 썼냐니까 안썼다 하더니

 

마눌이 장모님을 모시고 화장실에가

"엄마 어떤걸로 양치해?"

하고 물으니 내 칫솔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이걸로 쓴다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가끔씩 내 칫솔에 물기가 묻어 있어도 그려러니 하고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장모님이 사용한 것이었다.

 

칫솔통에 6개정도의 각기 다른 색깔의 칫솔이 있었는데 장모님은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깔을 바꿔서 사용했던 것이 었다.

 

집안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이나 행동이 내 생각과 달라도

무조건 따르고 존중해 드리는게 내 생각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내 칫솔은 다른것으로 바꾸어 숨겨두고 사용함으로 칫솔사건은

아주 작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8년간을 장모님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소소하고 자잘한

행복을 누리다가 영면을 하셨다.

 

죽을복을 타고 태어나셨는지 노환으로 잠간 아프시다가

하늘나라로 행복한 소풍을 떠나신 것이었다.

 

장모님을 모시고 살때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같이

아버님.어머님(시부모님) 을 찾아 뵙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고 집사람 역시 불만 없이 잘 따라 주었었다.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표시가 별로 안나도 나간 자리는

표시가 많이 난다는 말처럼 한동안 적적함과 그리움으로

많은 날들을 지내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제사에 참석을 한다.

 

장모님도 아들과 딸들이 계시지만

항상 막내사위와 사신다고 하여 오빠나 언니들이 서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나 자신도 집안에 어른이신 장모님이 계심으로 인해 든든하고

내가 모실 수 있음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살았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본가나 처가쪽에도 부모님이 안계시니

마음속으로 그리워 할뿐 모든 분들의 극락왕생을 다시 한번 빌어본다.

 

늦은밤 잘시간이 되어 이쁜 강쥐녀석들의 집을 좌우로

정열하여 놓아두니 고맙게도 각자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별,체리,딸기야 내일 아침까지 굿잠 자거라.

 

 

 

 

아침까지 자기집에서 잘잔 녀석들이 아침밥을 달라 따라다닌다.

 

휴~~~

녀석들의 잠자리 이전 프로젝트는 성공이어서 이 아침 기분이 좋다.

 

 

魚得水逝 而相忘乎水 (어득수서 이상망호수)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조승풍비 이불지유풍)
識此 可以超物累 可以樂天機 (식차 가이초물누 가이낙천기)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되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건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알면 사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며,
하늘의 오묘한 작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니라.(채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