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절에서 생전예수재를 지낸다 하여 그 뜻도 모르고
따라가 생전예수재를 지낸 적이 있었다.
대웅전 법당에서, 죽어서 관속에 누워 있다 생각하고 길게 누워 고뇌하고
참회하고 잘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하며 묵념에 잠겨 보기도 하고
미리 유언장도 작성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생전예수재란 생전예수시왕생칠재(生前豫修十王生七齋)의 준말이다.
생전예수재는 살아 있는 동안에 진 빛을 참회하고 미리 업장을 소멸하고
청정한 몸과 마음 가짐으로 죽음에 대비하는 불교의 수행의식이다.
여기서 예수(豫修)는 미리 닦아 익힌다.
명부시왕(冥府十王)은 불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가
명부사자(冥府使者)를 따라 명부로 간다.
이때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10명의 왕을 명부시왕이라 한다.
생칠(生七)은 살아생전 미리 일주일동안 49재와 같은 불교의식을 봉행하는 것이다.
예수제는 윤달에 하는데 평년의 12개월 보다 1달이 더 많은 달로 손이 없다하여
수의를 만들기도 하고 이장(移葬)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한다.
내가 죽은후 후손들이 죽은 나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 주는 것도 중요 하겠지만 생전에
나 스스로가 참회,반성,공부,업을 미리 닦고 보시를 통한 스스로의 참된 수행과 공덕으로 자신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재(齋)를 지내고 난 후 한동안 충격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인지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넋놓고 있어야만 했었다.
하기사 평생 수양을 한 선각자들도 삶이란 화두(話頭)를 제대로 잡지 못함이
부지기수인데 나 같은 범부는 오죽할까.
여기에 선각자들의 묘비명이나 임종게(臨終偈)를 보며
그져 주어진 운명에 맞추어 열심히 살고 느끼며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극작가인 버나드 쇼도 94세에
운명할때 묘비명을 "우물 쭈물 하다 내 이럴줄 알았다." 라고 했고,
모파상은 "나는 모든 것을 갖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했고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 헤밍웨이.
"이만하면 됐다." 철학자 칸트"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라고 선각자들은 말했다.
또 수행한 스님들이 입적할때 마지막 남긴 임종계(臨終偈)를 보며
삶의 나침반(羅針盤)으로 삼으려 한다.
혜정스님
今日去捨身(금일거사신 ; 오늘 이 몸을 버리고 가니)
無形唯一人(무형유일인 ; 형상이 없는 오직 한 사람이)
三角山前舞(삼각산전무 ; 삼각산 앞에서 춤을 추니)
石人笑點頭(석인소점두 ; 돌사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네)
서산대사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