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은
결실과 이별이 상존한다
가을비가 낙옆을 개끗하게 씻어주고 고운옷을 입혀
보내는 까닭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기에 그렇다지만,
또 다른 결실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다.
겨울의 문턱에 항상 생각나는 옛 추억중 하나는 김치인데,
3-4월경 봄동배추가 나와서 부터 11월 김장철이 되기전까지는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궈 먹는데,
한겨울을 나기위해서 김장은 필수 코스였다.
더더욱 별반찬이 없는 예전에는 꼭 김장을 담궈야 했다
그 옛날 아버님이 건설현장쪽 일을 하셔서 땅이 얼게 되는
겨울에는 일감이 없어 벌이가 시원찮으면 김장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그럴때는 가까운 지인들한테 얻어 먹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비위가 이상한지 젓갈을 넣고 담근 김치를 먹지 못했다.
김장은 대부분 새우젓이나 굴을 넣고 담는데 그 비릿한 맛과
김치사이로 보이는 젓갈이 너무나도 싫었었다.
김장을 못해서 얻어 먹는 김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새우젓이나 굴이 들어간 김치인데 쌀이 없어 국수나 수제비를 먹는
경우에도 김치는 못먹고 다른 반찬이나
반찬없이 밀가루 음식을 꾸역 꾸역 먹어야 했었다.
지금은 이곳 저곳 맛집을 찾아다니며 뭐든지
잘먹는 입맛이 되었지만 그때는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
돈이 있으면 다른 것을 먹이면 되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마음은
찢어지고 가슴에 한이되어 맺혔으리라.
7남매를 먹이고,입히고,재우고,학교에 보내야 했는데
오로지 수입은 아버님 혼자 였고 그것도 겨울에는 일감이 없어
수입이 없었는데 지금 헤아려 보면 우리남매를 그 어려움속에서 어떻게
키워 내셨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러다 아버님이 수입이 좋아지면 김장을 하는데
기본적으로 150에서 200포기를 하는데 어린마음에
김장하는 날은 집안의 잔칫날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들과 식구들이 모여 품앗이를 하는데,
아침에는 큰 들통에 별반 들어가는것 없이
동태와 무를 넣고 푹푹끓여 한대접씩 끼고 앉아 먹으면
그 맛이 꿀맛인지라 그 큰 들통이 금방 바닥을 들어내고,
점심때에는 배추속 양념을 배추잎에 싸서 한웅큼 베어 물면
양념즙과 배추즙이 어우러져 환상의 맛이 되었고,
저녁에는 꽁꽁얼어버린 오징어를 들통에 넣고
무와 고추장,고추가루를 넣고 푹끓여내면 오징어 맛과
시원한 국물에 밥2공기는 기본으로 뚝닥 해치우기도 했었다.
김장하고 남은 무는 한겨울 깊은 밤에 우리들의 훌륭한 간식이었고,
무채를 썰어 넣은 양념장이 익으면 밥에 넣고 비벼 먹으면
신맛에 침이 절로 나오며 밥도둑 역할을 충분히 했었다.
그리고 묵묵히 김장을 도와주신 아버님은 해마다 신문지에 배추3포기 정도를
10여번 둘둘말아 장농위에 올려 두셨는데 이듬해 구정(설날)전에
꺼내 배추겉잎 몇개를 벗겨내면 그때까지도 싱싱한 배추를 가지고
차례를 지내거나 겉절이 또는 물김치를 만들어 싱싱하고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 있게 하셨었다.
지금도 가끔 어머님께 그때먹던 동태찌게나 오징어국을
끓여달라 해서 먹어 보지만 추억을 먹고 사는 지금의 내 입맛에는
그때만큼 맛있지 않는게 사실이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겨울이 다가오면 이렇듯 꼭 김장생각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배고팠던 시절 김장의 추억이 내 머릿속에
깊게 뿌리 박혀 있어서 였을 것이다.
이제 김장철이 다가오니 마눌한테 잘보이고 점수를 따서
김장할때 몇포기 더해 어머님께 갔다 드려야겠다.
작년에 드린 김장김치와 동치미를 맛나게 드셨다 하니.
이제 중년이 된 지금 그 옛날 어렵고 힘들었던 과거를
아련하고 애듯한 추억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고,
가끔씩 들춰보며 지금이 행복한 삶이란걸 다시금
일깨워 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언제나 꽉채워지기만을 바라며 무한질주로 달려온 세월,
꽉채워지는 순간 바로 기울어지는 보름달을 보며
비움의 교훈도 느낄 수 있는 현명한 삶이고 싶다.
망월(望月) -보름달 (송익필)
未圓常恨就圓遲 (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 (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事摠如斯 (백년심사총여사)
둥글게 됨을 늘 바라더니 둥글게 됨은 더디 되어
어찌하다 둥글어지자 바로 기울어지나
서른 밤 지나 둥글어진 단 하룻밤
일생의 뜻하는 일도 저러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