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의 어느 하루.....................
나는 지금 김포공황 근처 메이필드호텔
이원이라는 연회장 앞에 서있다.
조카의 첫아이 돐잔치에 온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
나의 발걸음은 갈팡 질팡이다.
돐잔치가 있기 이틀전에 조카와 통화했다.
"너는 작은엄마한테 전화 한번 해서 우리 아이 돐잔치에 오세요" 라고
한번만 전화하면 우리 부부가 같이 가서 축하해 줄텐데 왜 전화 안했어,
지금이라도 전화해봐" 나의 이야기에 조카는 대뜸
"작은엄마는 아이 낳는데 한번도 안오고
전화 한통 없는데 내가 왜 전화 해 안오면 그만이지....
그리고 삼촌도 곤란하면 오지마, 나도 두분께 섭섭한것 많아"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고 화가 머리끝 까지 치솟는다.
"뭐가 섭섭한게 많아 , 서로 이해 하고 살면되지
너는 작은엄마 한테 잘한게 뭐가 있는데, 너도 똑같아.
삼촌이 너한테 전화하라 할수도 있지 왜 못하는데" 그런식으로 서로
설전을 벌이다가 전화를 끊었고 집사람 역시 "초대하지 않은 잔치에
뭐하러 가느냐고." 고 녹록치 않은 얼굴로 대답한다.
나의 머리속은 지구를 수십바퀴를 돌고 또 돈다.
큰형님이 이혼을 하고 1살때부터 우리 7남매와 같이 크면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머니가 엄마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식구 모두가 조카를 돌보고 키우며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던 것이다.
본인으로서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체기를 가슴에 안고 살아 가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좋은사람 만나 첫아이 낳고 돐잔치를 하는
감회가 새로운 날에 많이 많이 축하해 주어야 할텐데
나는 오히려 마음속의 인연을 끊을 생각이 가득하다.
나 나름대로 어렸을때 부터 지금까지 잘해주었다
생각했는데 큰소리 치고 대드는걸 보니 자괴감이 든다.
인연이 없어 질수록 고뇌와 번뇌가 덜하다는 나의 생각때문일 것이다.
조카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며 사랑도 못받고
유치원이나 학교입학 및 졸업때도 거의 아빠와 새엄마는
오지 않고 삼촌,고모,할머니가 축하해 주러 간다.
아빠와 새엄마하고는 연락을 안하며 살고 있고
아이를 낳을때도, 백일때도, 돐때도,
초대하지도 찾아 오지도 않고 살고있다.
조카가 40이 넘도록 그렇게 살고 있으니 감정의 골은
더욱더 깊어만 가고 있다.
서로 화해시킬 생각으로 내가 동분서주 하지만
언제나 두 부녀지간은 냉담하다.
차라리 나도 오지 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에
나의 발걸음은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잘다듬어진 잔디와 나무와 하늘만 하염없이 쳐다 보고있다.
돐잔치가 시작될거니 들어오라는 안내자의 말을 듣고 안으로
들어서니 조카가 손자를 안고 서있다.
조카는 보는둥 마는둥 하고 손자를 안아본다.
눈물이 핑돈다.
얼른 손자를 건네주고 자리에 앉아 사회자의 멘트를 듣는다
다행히 맨앞자리라 나의 그런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손자녀석의 동영상이 돌아가고 돌잡이와 사진촬영 내내
가슴으로 흐르는 눈물을 꾸역 꾸역 참으며 겨우 자라를
보존하고 있는데 사회자가 나의 이름을 호명하며
많은 분들이 아이한테 써준 덕담중에 제일 귀감이 되는 덕담을
쓰셨다며 나와서 읽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급히 전화 받는 시늉을 하며 밖으로 나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수 밖에 없었다.
""" 언제나,항상,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고
그 안에 성주(손자이름)가 있음에 이 어찌 행복하지 아니한가.
언제나,항상,늘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안아주고, 위로하고,
공경하고 살며,남을 위해
봉사하고 베풀며 사는 삶이기를 바란다. """
따뜻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어 주고 싶었지만
눈물이 앞을가려 읽어 주지 못했지만 후에 부부가 같이 읽어 보고
그대로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만의 방황을 하고 있다.
늦은 시간 까지 사무실에 혼자 있으며 많은 생각과 방황으로
살아온 날들을 곱씹어 보며 끝없는 방황을 끝냈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조카와의 인연과 부녀지간의 화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심사숙고 해야할 과제이다.
하늘의 현명한 계시가 있기를 바라는 나의 텅빈 머리는
다시 한번 하늘을 올려다 본다.
2013년 4월의 어느 하루 ........................
나는 지금 강서구에 있는 미즈메디병원앞에 서있다.
조카가 둘째를 낳고 병원에 있기 대문이다.
세상의 모든 친정식구와 엄마 아빠들은 축하해 주며
밤,낮으로 간호하며 뒷바라지를 하지만,
녀석은 텅빈 병실에 혼자 누워 있었다.
힘든 수술을 끝내고 나오면 아빠의 환한 미소와
엄마의 따스한 손길이 있어야 하는데
아빠도 새엄마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신랑은 아들 성주가 감기에 걸려 출근도 못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어서 아마도 시부모께서 짬짬이
왔다 갔다 하시는가 보다.
신생아실앞 큰 유리창에 번호를 보여주니 이쁜공주님이 등장한다.
오똑한 코, 앵두 같은 입술,또렸한 이목구비가 역시
엄마를 닮아 이쁘고,
핏줄의 정이 파르르 전달된다.
울컥 감정이 치솟고 눈앞이 뿌연 안개로 뒤덮인다.
태어나 가장 작은 아이에게 큰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내 핏줄로 태어나 반갑고 고맙워 작은공주야,
현재는 비록 작지만 앞으로 큰삶을 살기를 바란다.
큰삶이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만족해 하며,
하고 싶은일을 하며,
항상 입가에 웃음이 있는
그런 삶을 큰삶이라 이야기 하고 싶구나.
아파도 조금만 아프고,
힘들어도 조금만 힘들고,
언제나 나자신도 중요하지만
항상 다른사람도 생각하며,
기본과 도리를 지키며,
사랑받는 것도 좋지만 많은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의 시간은 pm 10시...........
병원을 나온 발길은 터벅 터벅 밤길을 헤메인다.
오늘도 집에 가서 새벽까지 곡주나 한잔 해야겠다.
진실로 모두의 안녕을 빌며.......
찰리 채프린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