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가 오락가락 하니 물가에 앉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낚시를 하고 싶다.
젊었을때는 낚시하는걸 즐겼었다.
1988년쯤 전문꾼들은 잠원동 한강시민공원에서 릴이나 방울낚시로
40-60cm 정도의 잉어를 하루에 5-6마리씩 낚아 올리며 많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운좋은 날에는 민물장어도,가물치도 잡을 때가 있었다.
임자를 잘 만나면 1마리당 2-3만원에 팔리기도 했었다.
잉어를 푹고아 마시면 수술한 환자에게 좋고,
해산한 산모들에게 아주 좋은 몸보신재였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햇빛이 가장 따뜻한 2-3시쯤에 한강에 나가 릴낚시에
미끼를 끼우지 않고 갈고리가 큰 삼봉바늘을 던져넣고 빠르게 당기며
훌치기 낚시를 하면 눈치라는 물고기가 햇빛이 따뜻한 물가로
나와 있다가 등이나 배.꼬리에 걸려 나오는데 크기는 20-40cm는
기본으로 걸려 나오는데 두마리 정도 잡아 사무실에서
매운탕에 이스리 한잔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때 포니자동차 트렁크에는 항상 낚시대와 어항이 실려져 있어
물가에만 가면 낚시대 드리우고 어항을 설치해 놓아 건져올린 고기나
피래미를 넣고 고추장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세월을 낚았었다.
낚시하며 먹는 라면과 매운탕,
그리고 이스리 한고뿌와 커피 마시며 피우는 담배 한까치는
내 영혼을 달래는 충분한 일용할 양식이었다.
밤늦도록 한잔하고 거나하게 취기가 올라오면
음주운전하며 집으로 갈수없어,본능적으로 3정거장 밖에 안되는
잠원동 한강 고수부지로 가게 된다.
돗자리깔고 미끼 없는 낚시대 드리우고 앉으면 달빛 별빛에 반사되는
물결은 구름속을 걷는 포근함을 느끼게 하고 휘엉청 밝은 달은
술취한 나에게 하늘의 은총을 내리는 착각속에 행복했었다.
늦은밤 하늘을 이불삼아 잠이 들면
해가 중천에 뜬것도 모르고 자다보면 한강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의
분주함에 잠에서 깨곤 했었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었던 내가 낚시와 거리가 멀어지게 된 이유는
결혼을 하고 난 이후 였었다.
신갈저수지에서 35cm 붕어를 잡아 집에서 어탁을 뜨는데
차츰 마눌의 잔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해 낚시의 재미를 느끼게 하려고
여러번 함께 갔었지만 취미가 다르다 보니 자연적으로 낚시하러 가는게
뜸해지게 되었고 살생하지 말라는 선각자들의 교훈도 차츰 받아들이며,
생명 있는 모든것은 아픔이 있으며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고,
존중해야 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가 부슬 부슬 오는 요즈음 낚시대 드리우고 물가에 여울지는
빗방울을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의 유유자적(悠悠自適)이 그리워지나 보다.
무거운 무게로 어께에 내려와 앉은 오늘이 지나고
멀지 않은 미래에 가어옹거사(假漁翁居士)가 되어
세월과 즐거움을 낚아야 겠다.
언제나 나는 어옹(漁翁)이 아닌 가어옹(假漁翁)이고 싶다.
(어옹 ; 고기잡이 하는 늙은이)
(가어옹 ; 어부가 아니면서 어부처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속세를 벗어나 한적한 물가에서 낚시를 하며 술과 시에
묻혀 지내는 양반을 이르는 말.)
不爲浮名役役忙 (불위부명역역망)
生涯追逐水雲鄕 (생애추축수운향)
平湖春暖烟千里 (평호춘난연천리)
高岸秋高月一航 (고안추고월일항)
紫陌紅塵無夢寐 (자맥홍진무몽매)
綠蓑靑笠共行藏 (녹사청립공행장)
一聲欸乃舟中趣 (일성애내주중취)
那羨人間有玉堂 (나선인간유옥당). (어옹.漁翁.설장수)
*옥당;관청의 별칭(벼슬자리)
헛된 이름 따라 허덕허덕 바삐 다니지 않고
평생 물과 구름 가득한 마을을 찾아 다녔네
따쓰한 봄 잔잔한 호수에는 안개가 천 리에 끼었고
맑은 가을날 옛 기슭엔 달이 배 한 척 비추네
서울 길의 붉은 먼지 꿈에서도 바라지 않고
초록 도롱이 푸른 삿갓과 함께 살아간다네
어기여차 노랫소리는 뱃사람의 흥취이니
세상에 옥당(玉堂)있다고 어찌 부러워하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