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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와 리아를 보며............인연이란..................

천량성 2014. 10. 18. 16:13

 

 

예전에 북유럽 여행을 갔었는데 모스크바를 거쳐 덴마크에서

1박 2일을 하고 노르웨이,스웨덴에서 실자리안 크루즈 를 타고

핀란드 로 갔다가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여행이었는데,

 

안델센의"인어공주"를 보기위해 코펜하겐의 항구를 갔었고,

시청사 옆에 있는 안델센동상도 만나 보았었다.

 

1913년 칼 야곱센(칼스버그 2대 회장)이 조각가에게 부탁해

만들었는데 지금은 코펜하겐의 상징이 되고 있다.

 

세계여행중에 벨기에 브뤼셀 에 있는 "오줌 싸는 아이"의 동상과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 있는 "인어공주"가 제일 실망스런

순위 1,2위를 다툰다고 하던데 내가 봐도 그런것 같다.

 

 

인어공주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인간세계를 동경한 에리얼공주는 에릭왕자의 생일축하연을 구경하던중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바다에 빠진 왕자를 구해주고 자기를 기억하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고 바다로 돌아 왔는데,

 

공주는 그를 짝사랑하게 되어 육지로 올라가 왕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마녀 "울슐라"의 계략에 속아 3일 동안 다리가 있는 인간으로 바꾸어 주는대신

왕자에게 3일 안에 사랑의 키스를 받지 못하면 공주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고,다시 인어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마녀의 소유물로 전락되는 약속을 한다.

 

인간으로 변해 왕자의 사랑의 키스를 받기위해 만나지만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주어 벙어리인 공주를 알아보지 못한 왕자와.마녀의 방해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받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사랑의 키스 를

받고 많은 사람들과 인어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게 되는 줄거리의

인어공주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의 필수 아동도서다.

 

안델센의 거리 일명 카페거리에서의 시원한 생맥주 한잔이 참 맛있었는데

카페 주인이 테이블에 올려 놓을 수 있는 작은 태극기를 우리 테이블에

올려 놓으며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라고 하는데 조국애로 가슴이 뭉클했었다.

 

카페거리 앞에 흐르는 운하에 유람선이 다니고 천혜의 자연환경이 부러운

북유럽의 선진국이고 해마다 선정하는 행복지수가 제일 높은나라중 항상

5위 안에  드는 나라이며 여유로움과 깨끗한 거리와 행복이 자연스레

베어 나오는 미소를 보며 내 마음도 박하사탕 처럼 환해짐을 느꼈었다.

 

공항근처에 있는 에어포트 호텔에 1박을 하였는데,

까만하늘에서 내려오는 비행기의 착륙과,

새벽의 여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신선한 아침까지 하늘을 나는 큰 비행체의

착륙과 비상을 오랜동안 가슴에 담으며 스스로 비상하는 상상을 했었다.

언제나 즐거움과 행복함이 스스로 비상하는 상상을 .......

 

 

30여년 전 어느 날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가 서울의 어는 절(寺)

일주문 앞에 놓아져 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밖에 나오던 스님이 갓난아이를 데리고 들어간다.

이때부터 아이는 스님들의 손에 서 자라며, 절에서 학교를

다니며 스스로도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절은 비구니(여자스님)만 있는 종단의 절이 었고 그 아이도 여자였다.

여스님이 있는 곳을 찾아 일부러 업둥이를 갔다 놓은것 같았다.

 

아이의 속마음은 많이 힘들었으리라.......

친구도 별로 없었고 외로움이 많았으리라.......

정상적인 가정이 아닌 절에서 학교를 다니고,

스님엄마가 부모역할을 했으니 학교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그러나 아이는 밝고 명랑하게 자라주었고 170센치가 넘는

여자로서는 큰키로 잘 성장해 주어 입양했던 스님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닐때 집사람과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집사람에게는 아줌마,나에게는 아저씨라 부르며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어쩌다 한번 보게 되면 집사람에게 늦은 시간까지 미주알 고주알,

재잘 재잘거리며 엄마의 정을 느끼며 좋아했던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스님엄마가 아이를 보고 우리집에 입양을 가서

가정의 따스함과 사랑을 받고 살라고 조심스레 권해 보았지만,

 

이미 다 커버린 아이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그렇지 못함을 깨달아

대답을 회피한체 절에서 머물며 관광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도 하고

일본으로 취업을 나가기도 하며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주체성의 혼동으로 마음을 못잡고 방황하게 되니

스님엄마는 너의 기구한 운명이 스님이 되라는 팔자인가 보다 하며

머리를 깎으라고 권하였고 아이는 오랜시간 고민을

하며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였다. 

 

많은 혼돈과 방황속에서 외국인회사를 다니기도 하고,

이곳 저곳을 여행도 다니더니 컴퓨터업에 종사하는

덴마크 사람과 사귀게 되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 잘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는 힘든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조금씩 안정 되더니

사귀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여 덴마크로 이민가기로 결정했다.

 

스님엄마와 우리는 은연중에 그렇게 되기를 바랬었기에

그 아이의 과거를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 잘살기를 바라며

가슴속 깊이 축복을 했었다.

 

부모의 버림을 받고 지금껏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며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고아이며 절에서 살고있는 그 아이를 편견 없이 받아주며 사랑해줄

남자가 과연 이 나라에 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우리는 두 사람의

결혼을 가슴 깊이 더 많이 축복해 주었다.

 

어느날 그 아이는 홀로 덴마크로 떠나버리고 한참이 지난후

쌍둥이 여자아이를 낳았다는 연락이 와서 스님엄마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쌍둥이 아이들을 보러 스님엄마는 덴마크로 가서

오손 도손 잘살고 있는 정상적인 가정을 보고 지금껏 가슴에 응어리 졌던

큰 짐을  그 아이가 살고있는 북대서양 앞바다에 시원스레

던져버리고 가볍고 힘찬 발걸음으로 한국에 돌아 왔다.

 

2014년 9월 쌍둥이 아이들의 돐을 기념하고,

돐잔치를 한국에서 하기로 하여 부부와 쌍둥이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 아이를 아는 많은 절 식구와 신도들이 내 일인양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고 우리도 쌍둥이아이들의 돐한복을 선물하며

간소하고 행복과 축복넘치는 돐잔치를 잘치루었다.

 

덴마크신랑은 돐잔치 풍속을 즐기며 좋아했고 절에서의 생활에 불편함도

없이 내년에는 한달간 휴가를 내어 오겠다며 2주 휴가의

짧음을 아쉬워해 우리모두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다.

 

덴마크에서 살면서 한국이 그립고 외로울때는 신랑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부리며 당신이 내일 출근하면 아이들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그 다음날 부터 시어머니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들이 퇴근 할 때까지 쌍둥이 아이들을 돌봐주며,

 

며칠동안 그렇게 감시아닌 감시를 한다며 행복한 웃을을 짓는

그 아이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만 같아라 하며 흡족한 웃음을 보낸다.

 

급여의 50%가 세금으로 나가지만,

자녀들 무상교육.

의료비 무료.

그리고 무었보다 중요한건 학벌의 차이가 없고

인종의 차별없이 동등하게 생각하는 선진국의 마인드가 부러운

덴마크에서 남편과 루나.리아가 함께 있음을 두손모아 감사드린다.

 

 

 

<왼쪽이 루나, 오른쪽이 리아 >

사랑스럽고 이쁜녀석들..............

 

 

 

 

 

몆년전 덴마크 공항근처의 에어포트호텔에서 비행기의 이.착륙을 보며

언제나 즐거움과 행복함이 스스로 비상하는 상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 아이의 쌍둥이 딸과 그 부부와 함께 북대서양의 하늘을

훨훨날으며 행복한 비상을 함께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往者不可諫 (왕자불가간)

來者猶可追 (래자유가추)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나

다가올 일은 잘할 수 있다.(논어)

 

 

 

그후 1년이 되어갈 즈음 ...................

이쁜 천사들 루나와 리아가족이 1년전 약속을 잊지 않고 한국에 왔다.

루나와 리아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나온다

휴일날 설레고 반가운 마음으로 이쁜 강쥐들을(별.체리.딸기) 데리고

녀석들을 만나러 갔다.

 

녀석들의 아빠와 엄마의 반가운 해후를 하고 서로 잘지냈음을

확인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낮잠을 자고 나온 리아와 루나가

큰 눈망울로 주변을 살핀다.

 

덴마크에서 보던 사람들과 다름에 선뜻 다가오지 못하고 분위기 파악만 한다.

 

그렇게 30여분이 지나자 강쥐들과 잘놀더니 덜썩 내 무릎에 앉아

놀기도 하고 가슴에 안겨와 따스하게 안아주기도 하고  

엄마가 시키는데로 하이파이브도 하고 인사하는 시늉도 한다.

 

약 20개월 정도인데 아직까지 덴마크말도 영어도 한국말도 할줄 모르고

옹알이를 하면서 의사표현을  하는 모습이 넘 귀엽다.

 

한국에 오면 삼계탕.닭볶음탕등 먹고싶은것이 많아

다 찾아먹고 간다 했는데 점심에 카레가 나와 두부부도 아이들도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애아빠는 매 끼니마다 고기를 먹는다는데

살도 안찌고 몸짱인게 부러울 따름이다.

점심에 카레와 항정살 구운것을 먹으며 간간이 

한국반찬들을(파김치) 먹는것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루나와 리아가 오면 손을 잡고 밖에 나가  나무와 꽃과 새들과 함께

걷고 싶었는데 새벽부터 비가와 방에서 왔다 갔다하며

루나와 리아의 작은손의 온기를 느끼며 뿌듯한 행복이 밀려온다.

 

다음주에 돌아간다며 내년에는 한국에 못오니 덴마크로 여행오라고

쌍둥이엄마가 아양을 떤다.

 

덕분에 올가을이나 내년에 북유럽여행을 다시한번 꿈꾸어 본다.

 

그냥 이렇게 잘살아주는것이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그에게 마음으로 연꽃을 건낸다.

한 꽃받침에 두 송이가 피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지고

연밥에는 씨가 많아 다산을 상징하고

연밥의 씨는 수천년을 가니 부부와 아이들이 장수하라고.......

 

아름다운 여성의 시기는 짧고,

훌륭한 어머니로서의  시기는 영원할 것이다(공자)

 

 

 

高原陸地 不生蓮花   (고원육지 불생연화) 

卑濕汚泥 乃生此花   (비습오니 내생차화)

 

높고 기름진 곳에서 연꽃은 생겨나지 않고

낮고 습한 더러운 진흙속에서 연꽃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