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 눈과 치아가 제일먼저 안좋은 반응이 오는것 같다.
10여년전 어느날 눈이 쉽게 피로하고 가까운 글씨가 안보여 안과에 갔더니 노안이란다.
아 !!!!!!! ...........내게도 벌써.............
어떻게 내가 노인도 아닌데 ...............노안이란 말인가..........
그때의 심정은 배신감같은 침통함에 한동안 기분이 우울했었다.
비슷한 시기에 치아도 문제가 되어 점검도 받으며 소소한 치료를 받었었다.
7년전 왼쪽 위 크라운을 씌운어금니에 문제가 생겨 6개월가량 치료와 수술을
병행하며 2백여만원을 들여 치아를 지켜냈었다.
임플란특가격보다 비싸게 들여 치아를 지켜낸 덕에 지금껏 전부 내 치아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치과진료를 받으며 느낀 심정은 .............
몇몇의사는 사명감과 정의로움으로 환자의 살리고 치유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의술을 펼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치료만 하면 되는것을
크라운을 쒸워야 한다거나,최대한 자기 치아를 살려서 쓸수 있게 해야하는데
임플란트를 해야한다고 치아를 빼서 오랜시간 비용과 고통을 주는 치과의사들을
보았는데 환자의 건강한 치료보다 돈벌이로 전략해버린 의사의 양심은
범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물론 양심있고 정의로운 치과의사들이 더 많다.
좋은 치과의사를 만나 검진을 받으며 치과에대한 스트레스를 버린지 오래되었다.
고대그리스 원본이 아닌 1948년 "세계 의사협회" 에서 제정한 수정판인(제네바 선언) 후
여러차례 개정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 전문은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써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알려준 모든 내정의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종교,국적,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이상의 서약을 나는 나의 자유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많은 비용과 고통을 겪으며 치과치료를 받은후 치아관리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하고있다.
식사후 먼저 치실을 사용해 음식물 찌꺼기 제거와 치아사이를 마찰해주고,
치간치실로 치아와 잇몸사이의 이물질 제거와 잇몸 마사지를 하고,
양치질은 부드럽게 하면서 혀와 천정.양볼.혀아래까지 닦고나면 대략 10-15분내외가
걸리니 식사때를 제외하고 간식이나 음료수.차.커피를 먹지 않는다.
예전 어느날 치실과 치간치실.양치질을 하고 이쁜 강쥐3마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데 양치질을 하러간 집사람이 큰 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당신 내 칫솔로 양치 했어?
자기 것도 구분을 못해?"
하면서 칫솔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었다.
그때도 이게 무슨 상황인가 30여년을 같이 살아왔는데,예전에 외국여행때나,
지방갔을때 칫솔이 없으면 같이 사용했는데 너무 과하게 행동하니 멘붕에 빠졌었다.
며칠전에는 막쓰는 플라스틱컵을 2개사와 각자 하나씩 쓰고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쇼파에 앉아 치간치실을 쓰고 플라스틱컵에
치간치실을 씻었는데 그걸 보고 마눌이 눈을 흘기며 기분나쁘다고
잔소리를 하더니 하나의 컵에다 "내꺼야" 하고 커다랗게 붙여놓았다.
칫솔에 대해서 작은 추억이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1988년.
결혼전 아내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고 나와 결혼후에도 나는 장모님과 함께 살았었다.
장모님의 고향은 개성이고 아버님이 한의원을 하시면서 인삼밭도 경작하셨었다.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셨었는데 인삼밭에서 잡초도 뽑고 동생도 돌보며 가사일을
도왔는데 훗날 그 동생이 목사님이 되어 기독교방송국 사장이 되었다.
그러던중 건축일로 개성에 오신 장인을 만나 몰래 데이트를 하시다가
양가 승락을 받고 결혼하여 효자동에서 신혼을 시작하셨다 한다.
그 당시에 배고픈 시절이라 인삼밭에서 일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몰래 인삼을 뽑아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80이 되도록 본인 치아에 신문도
안경을 쓰지 않고 보셨고, 하체도 운동선수 처럼 튼실하셨다.
하지만 조금씩 치매가 심해져 밥을 금방 드시고는 왜 밥을 안주냐고 밥을
달라는 경우도 있고 우리몰래 소주나 맥주를 사놓고 드시는 경우도 있었는데
맞벌이를 하는 우리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장모님이 술에 취해
우리를 맞이 하셨는데 무슨 술을 그리 많이 드셨느냐고 하면
내가 언제 술을 마셨느냐고 어긋장을 놓곤 하여 작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동네 노인정에 자주 가시는데 술친구분들과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집을 못찾아와 동사무소 직원이나 순경이 집에 모셔오기도 했었는데
많이 속상했던 일들은 노인정에서 술을 드시고 집에 오시다가 넘어져 손과 얼굴을
다쳐서 오랜동안 치료를 받을때와 집안의 물건들이 없어지거나 그릇을 깨는 경우에도
항상 본인이 안했다고 하시니 딸인 집사람 입장에서는 많이 속상했으리라.
그러던 어느날 양치를 하려니 내 칫솔이 물기가 묻어 있었다.
집사람보고 내 칫솔을 썼냐니까 안썼다 하더니 장모님과 화장실에가서
"엄마 어떤걸로 양치해?" 하고 물으니 내 칫솔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내 칫솔을 들어보이며 "이걸로 쓴다" 하는 것이었다.
전에도 가끔씩 내 칫솔에 물기가 묻어 있어도 그려러니 하고
사용했는데 그때마다 장모님이 사용한 것이었다.
칫솔통에 6개정도의 각기 다른 색깔의 칫솔이 있었는데 장모님은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색깔을 바꿔서 사용했던 것이 었다.
집안 어른들께서 하시는 말이나 행동이 내 생각과 달라도 무조건 따르고
존중해 드리는게 내 생각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고 내 칫솔은 다른것으로
바꾸어 숨겨두고 사용함으로 칫솔사건은 아주 작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8년간을 장모님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소소하고 자잘한
행복을 누리다가 돌아가시는 복이 있으신지 노환으로 잠시 아프시다가
하늘나라로 행복한 소풍을 떠나셨다.
2년전 내 어머님의 영면으로 집사람과 나는 양쪽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명절이나 큰 행사때 찾아가 품에 안아줄 부모님이 안계셔 마음 한편이
그리움과 애뜻함이 남아있다
유약겸하(柔弱謙下) 라는 말이 있다.
노자의 스승 상용이 임종이 다가오자
노자는 임종을 지켜보며 마지막 가르침을 청하였다.
"너는 혀(舌.설)가 있느냐" 물었고 노자는 있다고 답하고,
"그럼 이(齒.치)는 있느냐" 이는 다 빠지고 없습니다" 라고 답하자.
부드러워야 오래가는 것이다.
강한것은 부러지고 깨지고 빠져사라지는 것을 깨달아
柔弱謙下(유역겸하;부드러움이 강한것을 이긴다.
부드럽고 약하게 보이고 겸손하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강한것을 이긴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세상살아가는 슬기로운 이치와 지혜가 담긴 부드러움과 낮음을 말하는 것이다.
인도의 흰두교인들이 나누는 인사가 있다.나마스떼.
나마스떼는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또는 안녕하세요가 일반적이지만,
그 내면은 인사 대상의 지위와 학력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등을 고려해서 하는
인사가 아니고 현재 이 순간에있는 당신의 아뜨만을 향해 인사하는 것이다.
(아뜨만 ; 숨.호흡.생명의 근원.개인의 영혼.자아.world.soul)
魚得水逝 而相忘乎水 (어득수서 이상망호수)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조승풍비 이불지유풍)
識此 可以超物累 可以樂天機 (식차 가이초물누 가이낙천기)
물고기는 물속을 헤엄치되 물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건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알면 사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며,
하늘의 오묘한 작용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니라.(채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