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어느날 인천광역시 동구 트레킹을 했다
송현동 송현근린공원 내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구경했다.
1960-70년대 달동네 서민생활을 재현해 놓았기에 반가운 마음도,
조금은 아릿한 마음으로 옛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가난했던 어린시절 때문에 못해보고 못먹고 자랐던 생각에 조금은 우울하기도 했다.
인천에는 168개의 아름다운 섬이 있다.
각 섬의 활성화를 위해 섬생활의 특성을 살려 관광화하는
사업이 추진되는것으로 알고 있다.
흰머리가 나고 이제 조금씩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시점에서 바라보는 사진의 달동네는 그냥 달동네가 될수도 있고
지중해의 아름다운 산토리니가 될수도 있는 감정으로 익어가고 있다.
산토리니의 파란색 지붕보다 회색의 스레트 지붕이,양철 지붕이,
고등색 기와지붕이 더욱 정감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서민체질인가 보다.
연탄아궁이.찬장.가마솥.양은솥.놋쇠세수대야.쌀통.밥상.석유곤로............
옛 향수를 불러오기에 필수 충분조건이다.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1960년대를 살았었다.
그때의 신길동 역시 달동네 였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다.
저 연탄아궁이에 물을 끓여 세수와 목욕을 했고,
쌀통에서 쌀을 꺼내 밥을 하고
찬장에 반찬을 꺼내 끼니를 해결했었다.
쌀이 떨어져 수제비로 아침을 먹고 국민학교를 다녀오면 점심은 아침에
먹고 남은 팅팅불은 수제비를 찬장에서 꺼내 겨우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었다.
국민학교시절 6학년 졸업을 하는데 육성회비를 안냈다고 졸업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돈을 마련해 육성회비를 내면 졸업장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린나이인 내가 생각해도 서글픈 현실앞에 많이 우울했는데 ,
부모님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이었으리라.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부터 매일 저녁 배터지게 먹어야 포만감에 잠을 잤었다.
그덕분에 28인치 허리가 34인치로 불어났지만 어렸을때
못먹고 자란 욕구때문에 식탐이 많았었다.
그로인해 살을 빼야하는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 옛날 달동네 박물관을 보고 넋두리가 많냐고 하겠지만
그런 과거가 있어 지금의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리라..................
과거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처럼...............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둘러보고 자유공원을 산책하고
평생 처음으로 챠이나 타운을 갔었다.
챠이나타운에 들어서는 입구의 홍문에는 선린문(善鄰門)이라 쓰여있다.
직역하면 선하고 착한 이웃인데,
중국이 한국을 좋은이웃이라는 뜻으로 썼다고 한다.
유명한 중국집에는 30-40분정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다행히
예약을 해서 프리페스.만두.탕수육.고추잡채를 맛나게 먹고 하얀짜장과 검은짜장
그리고 국물이 얼큰한 짬뽕을 서로 나눠먹으며 먹방의 즐거움을 느꼈다.
학창시절 졸업식때 부모님이 없는 돈에 중국음식을 사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빠질 수 없는 고량주는 식도와 위,그리고 중추신경을 짜릿하게 해주는 일등공신이다.
즐거운 점심먹방을 끝내고 챠이나타운거리 투어와 일본거리투어,
그리고 동화마을을 걸으며 어린이의 마음으로 둘리.스파이더맨.콩쥐 팥쥐.
거북이와 토끼.인어공주.개구리 왕눈이와 함께 잠깐이나마 동심에 빠졌었다.
인천은.....................
칠남매와 부모님을 합해 9식구를 봉양하기 위해 큰누나,둘째누나가 70년대에
의류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곳이다.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몇가지 반찬을 봇짐에 싸서 영등포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을 걸려 부평 효성동에 도착해 면회시간에 맞줘 누나들에게 전해줬었다.
중학교시절,사춘기시절이라 김치냄새나는 보따리를 들고 심부름가는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고생하는
누나들을 보며 반찬이 흘러 냄새나는 보따리를 들고 오랜기간 인천을 다녔었다.
어쩌다 쉬는날에 신길동집에 누나들이 오면 동네가 발칵뒤집어 지기도 했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있던 시절에 누나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당당히 누비고 다녔으니 동네 총각들이 한트럭분량으로 따라 다녔었다.
그럴때는 내 어께가 으쓱하며 누나들이 그렇게 이쁠수가 없었다.
쑥스러워 한번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고맙고 사랑하는 누이들이다.
인천은
아버님 산소가 있고,
2년전 돌아가신 어머님의 납골당이 있고 서울에서 가까워 자손들이 자주가는 편이다.
절에 계시는 스님께서 써주신 길상(吉祥) 이라는
글을 집안에 걸어놓고 하루에 몇번씩 보고있다.
길상(吉祥)을 보면 저절로 부모님을 생각하게 되고 좋은일이 있기를.......
모두에게 좋은일이 있기를 소망하니까.
길상(吉祥)
좋고 반가운 것.경사스러운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 상서로움.
아름답고 착한징조.운수가 좋을 징조등이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겨울의 어느날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우울하기도 하고,
아릿한 마음으로 터벅 터벅 걷기도 했지만 이제는 타임머신에서 내리며
스스로에게 위안을 한다.
열심히 잘살아왔어, 수고했어, 토닥 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