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마음을 가지고 땅거미가 질 즈음 남산에 올라 갔었다. 하늘은 먹장구름으로 덮이더니 시원한 소나기를 쏟아낸다. 다행히 길옆 정자에서 소나기를 피하며 가로등에 비춰진 나무들 그리고 소나기와 청풍(淸風)을 즐기는 호사(豪奢)를 누렸다.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의 모든 생물(生物)은 웃음이 열닷냥이다. 소나기로 정화된 맑은 바람을 맞으며, 그 밤 삶과 죽음에 대한 미련이 아주 조금은 소나기와 함께 떠내려 갔다. 어제 김소월님의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라는 시가 떠올라 흥얼거리다가 "만수산을 나서서 옛 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 날 뵈올 수 있었으면" 하는 문구에서 김소월의 첫 사랑 오순이가 떠올라 "초혼"이라는 글을 쓰게 되었다.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은 철 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